2. 한국관광공사 디지털 관광주민증과 지역 자체 발행 디지털 관광증의 차이 🔍
[1] 발행 주체와 권한의 차이
한국관광공사의 디지털 주민증은 중앙정부 산하 공공기관이 전국 단위로 발행한다
제주 나우다와 남해군 관광문화재단의 디지털 관광증은 각 지역 기관이 해당 지역에 한정해 발행한다
발행 권한의 차이는 곧 '네트워크의 차이'와 '데이터 보유'의 차이다
중앙의 것은 전국 어디서나 통용되는 일종의 여권이고, 제주와 남해의 것은 각 지역에서만 효력을 발휘하는 지역 관광증이다
각 지역 내에서만 작동하는 독립된 시스템이다
남해군 관광문화재단 역시 제주와 유사한 방식으로 자체 디지털 관광증을 발행한다
남해를 찾는 관광객에게 지역 내 가맹점 할인 혜택을 제공하고, 관광 데이터를 수집해 남해만의 관광 콘텐츠를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제주가 '나우다'라는 브랜드로 정체성을 만들었다면, 남해도 '자신만의 이름과 전략'으로 관광객을 붙잡으려 한다. 같은 고민, 같은 출발선이다
[2] 혜택 범위와 제휴 네트워크
한국관광공사의 디지털 관광주민증은 전국 관광지, 숙박, 식음, 교통 등 광범위한 제휴망을 전제로 한다
제주 나우다는 제주 내 민영 관광지 39곳, 체험시설 47곳, 식음료점 74곳 등 160개 가맹점에서만 작동한다
남해 역시 남해 지역 내 제휴 업체에서만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공영 관광지 27곳을 추가하려는 제주의 계획이나, 남해가 확보한 가맹점 규모는 각 지역 안에 갇혀 있다
"혜택의 깊이는 있으되, 넓이는 없다"
제주를 벗어나는 순간 나우다는 무용지물이 되고, 남해를 떠나면 남해의 디지털 관광증도 쓸모가 없어진다
반면 한국관광공사의 디지털 주민증은 속초에서 여수까지, 경주에서 강릉까지 이어지는 전국구 네트워크를 지향한다
제주와 남해는 각자의 지역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관광객 입장에서는 불편이 따른다
제주에 갈 때는 나우다를 깔고, 남해에 갈 때는 남해 앱을 깔고, 강릉에 가면 또 다른 앱을 깔아야 한다
지역마다 다른 가입 절차, 다른 혜택 구조, 다른 미션 체계를 익혀야 한다
여행의 편의를 위해 만든 시스템이 오히려 여행자에게 피로를 안긴다
[3] 멤버십 설계와 충성도 전략
나우다는 3단계 멤버십 체계를 갖췄다. 제주 방문 횟수, 미션 참여, 업체 이용 실적에 따라 등급이 올라가고, 상위 이용자에게는 항공권과 농수산품을 증정한다. 게임처럼 설계된 구조다. 쓰면 쓸수록 보상이 커지고, 재방문을 유도하는 장치가 곳곳에 박혀 있다
남해 역시 유사한 멤버십 전략을 구사한다. 남해를 자주 찾는 관광객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고, 그들을 남해의 단골로 만들겠다는 의도다
한국관광공사의 디지털 주민증은 이런 멤버십 설계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전국 단위 플랫폼이다 보니 지역별 특화 보상보다는 표준화된 할인 혜택에 방점을 둔다
제주와 남해가 '단골 고객 만들기'에 집중한다면, 한국관광공사는 '모든 여행자의 기본 혜택 보장'에 무게를 둔다
깊이와 넓이, 충성도와 범용성 사이에서 각자 다른 선택을 한 것이다
[4] 데이터 활용과 정책 연계
나우다는 관광 데이터 수집을 명시적으로 표방한다
어디서 얼마나 쓰는지, 어떤 미션에 참여하는지, 재방문 주기는 어떤지를 추적하고 이를 관광상품 개발에 활용한다. 제주관광공사는 이 데이터를 통해 제주 관광의 체질을 바꾸겠다는 야심을 드러낸다
남해군 관광문화재단 역시 같은 목적으로 데이터를 수집한다. 남해만의 관광 패턴을 파악하고, 남해에 맞는 콘텐츠를 기획하겠다는 것이다
한국관광공사의 디지털 주민증 역시 데이터 수집이 핵심이지만, 그 목적은 다르다
전국 단위 관광 흐름을 파악하고, 중앙정부의 관광정책 수립에 활용하는 데 방점이 찍힌다
제주는 '우리 지역 관광 최적화', 남해는 '남해형 관광 콘텐츠 강화', 중앙은 '국가 관광산업 전체 설계'를 목표로 한다. "같은 데이터, 다른 쓰임새다"
[5] 시스템 확장성과 지속가능성
나우다는 네이버페이에 전적으로 의존한다(네이버페이 월렛에 NFT로 발급)
네이버 아이디가 없으면 발급조차 할 수 없다. 플랫폼 종속성이 크다는 얘기다
반면 한국관광공사의 디지털 관광주민증은 '대한민국 구석구석' 모바일 앱에서 발급받으며, 현재 전국 34개 지역에서 통합적으로 할인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티맵 등 민간 앱과 연계하는 등 확장성을 높이고 있어, 지역별 개별 앱보다 편의성 및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유리하다 제주와 남해는 빠르게 시작했지만, 확장성에서는 한계가 명확하다
지역마다 독자적인 디지털 주민증을 발행하면, 관광객은 지역마다 새로운 앱을 설치하거나 모바일 웹에 접속해야 한다
제주에서 나우다, 남해에서 남해로온, 강릉에서 또 다른 앱. 편의성은 오히려 떨어진다
한국관광공사의 디지털 주민증이 전국 표준으로 자리 잡으면, 하나의 앱으로 모든 지역을 아우를 수 있다 확장성과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중앙의 것이 유리하긴 하다
하지만 지역성과 데이터 마케팅 측면에서는 분명 단점 역시 존재한다
[6] 각자도생과 통합 어느쪽이 답인가?
일본은 JR 패스는 전국 단위 교통 패스가 있지만, 간사이 쓰루 패스, 홋카이도 레일 패스 같은 지역 독자 상품이 공존한다. 스위스도 마찬가지다. 통합 시스템 안에서도 지역 특성을 살릴 여지를 남겨둔 것이다
제주는 섬이고, 남해는 연안 관광의 독자성이 있다. 전국 단위 시스템으로 이들을 모두 담아내기는 어렵다 한편, 미국은 주립공원마다 독자 관리 시스템을 운영한다. 여행자는 주마다 다른 웹사이트에 가입해야 한다
그래서 민간 통합 플랫폼이 등장했고, 정부보다 민간이 먼저 틈새를 메웠다. 중국도 지역 관광 앱이 난립하자 알리페이와 위챗이 통합했다
한국도 같은 길을 걸을 수 있다
지역마다 독자 시스템을 만들면 결국 네이버나 카카오가 이들을 묶을 것이다
지역의 자율성을 지키려다 민간에 주도권을 내주는 아이러니가 발생할 수도 있다
[7] 정답은 공존의 설계다
유럽의 인터레일 패스는 33개국을 아우르지만, 각국의 지역 패스와 충돌하지 않는다
시스템 간 경쟁이 아니라 역할 분담이다. 한국관광공사가 전국 단위 기본 혜택을 제공하고, 제주와 남해는 지역 특화 혜택을 추가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표준화와 상호연동 시스템을 한국관광공사가 구축해야 한다
싱가포르의 싱패스가 본보기다. 하나의 인증 체계로 정부 서비스, 민간 서비스, 관광 할인을 모두 해결한다
싱가포르의 싱패스(SingPass)는 2003년 정부가 만든 디지털 신원 인증 시스템이다
처음엔 정부 서비스 접근용이었지만, 지금은 은행 업무, 병원 예약, 민간 결제, 관광 할인까지 하나의 인증으로 해결한다
관광청의 디지털 관광 혜택도 싱패스와 연동되어 있다. 관광객은 싱패스 하나로 센토사 섬 입장권 할인, 마리나베이 레스토랑 할인, 창이공항 면세점 혜택을 받는다
핵심은 기술 표준의 개방이다 📣📣
싱가포르 정부는 싱패스의 API를 민간에 공개했다
은행도, 병원도, 관광업체도 싱패스 인증 체계 위에 자신들의 서비스를 얹을 수 있다
중앙은 인증 인프라를 제공하고, 민간과 지역은 콘텐츠를 채운다
"경쟁이 아니라 생태계다"
한국도 가능하다. 한국관광공사가 디지털 주민증의 인증 체계를 만들고, 제주는 나우다의 멤버십을, 남해는 남해만의 미션을 그 위에 얹는다. 관광객은 한 번 가입으로 전국을 아우르고, 지역은 독자성을 지킨다. 싱패스가 증명했다. "통합과 자율은 양립할 수 있다"
한국관광공사가 기술 표준을 정하고, 제주와 남해가 그 위에서 자신만의 서비스를 얹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관광객은 한 번만 가입하면 되고, 지역은 독자성을 지킨다
통합이냐 분산이냐가 아니라, 어떻게 함께 갈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한국관광공사는 뿌리를 만들고, 지역은 가지를 뻗는다. 그것이 공존의 모습이다 💡 |